부평시장에 가면 빡빡머리 시절, 고등학교 친구가 아버지의 업을 이어 50년 가까이 도매상을 하고 있어 좋고, 오뎅과 꼬치를 팔며 후한 인심으로 하나 더 먹으라고 항상 권해주는 노점상 후배가 있어 좋고, 함께 일하는 후배의 작은어머님이 좌판에서 과일행상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고, 아들,딸 다 키우시고도 이젠 혼자가 되셔서 밥해드시고 구멍가게를 하는 후배의 늙으신 아버지를 볼 수 있어서 좋다. 그곳에 가면 조그만 바구니에 이것 저것 야채가 올려져 있고 커피를 들고 쏜살같이 내달리는 우리들의 아주머니가 있고 골목을 돌아서면 후미진 곳 어디에서는 팥죽, 호박죽, 메밀부침, 녹두부침을 파는 정겨운 할머니가 있다. 그렇다. 시장은 우리를 먹여 살리고, 가르치고, 다시 살아가는 지역경제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 공동체였다. 그곳에 가면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고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있고 나와 내아이가 기웃거리며 다닐 수 있는 너무도 끈적끈적 할 정도로 정으로 뭉쳐진 나의 고향과 삶의 뿌리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변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거대 자본으로 상대를 굴복을 시켜야만 생존하는 자본주의의 절대 묘미(?)인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왜곡된 가치관은 우리들의 공동체인 시장을 점령했고 이제 우리들의 고향은 무너지고 있다. 아니 무너지는 정도가 아니라 파괴되고 사라지고 송두리채 뿌리가 뽑힐 위기에 처해있다. 공생(共生)이 아니라 독생(獨生)의 대형마트만 있는 비열한 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럼 왜 우리의 고향은 이렇게 헌신짝 취급을 받을 정도로 수모를 겪는가?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정부의 대책없는 유통시장 개방정책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소위 유통재벌들에 의한 자본의 폭력성 때문이다. 재래시장은 물론 동네 구멍가게까지 죽일 심산으로 무섭게 달려오는 대형마트의 무분별한 입점때문이다. 그래서 더이상 물러설수 없는, 어떡해서든지 살아 남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결국 상인들의 조직으로 발전되었다.
작년 연말 노점상, 깡시장, 진흥상가, 재래시장, 문화의거리, 지하상가등 상인들이 "대형마트 규제와 시장활성화를 위한 상인대책협의회"가 만들어졌다. 대형마트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상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상대협을 만들었고 얼마전 부평시장에서, 부평역에서는 처음으로 상인대회가 열렸다. 정말 감격적이었다. 부평의 시장 상인 대표뿐만아니라 인천의 다른지역의 시장상인들도 많이 참석했다. 그날 깡시장앞에서 시장 상인들의 열렬한 갈채와 환영은 이 싸움이 얼마나 정당한가를 분명하게 알게 한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당이 앞장서서 이 모임을 구성하고 지원하는데 한몫한것에 대해 나는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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